회귀 후 동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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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호위 무사들이 나의 허름한 집 마당을 에워쌌을 때, 이혁수는 나를 위해 장작을 패고 있었다. 도끼를 휘둘러 단숨에 베어 버리자, 그 모습을 본 호위 무사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시골 아낙인 나에게 태자 곁에서 떨어지라며 더는 얽히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혁수는 손을 뻗어 내 앞을 막아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서연화는 내 부인이다. 반드시 나와 함께 돌아갈 것이다." "누구든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먼저 내 의견부터 물어보거라." 그 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다음 순간, 나는 손날로 이혁수의 목을 쳐 기절시킨 뒤, 그를 한 손으로 붙잡고 찔리는 마음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싱싱한 태자 전하가 필요하십니까?" "비싸지 않습니다. 딱 오십 냥이면 됩니다." 호위 무사들은 서로 얼굴만 마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 낭자, 황궁으로 가지 않으실 겁니까?"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생에 이미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동궁의 백옥 계단은 너무도 길어서, 시골 아낙의 피가 튀어도 얼룩 하나 남지 않았다.

Chapters (1)

第1章

수많은 호위 무사들이 나의 허름한 집 마당을 에워쌌을 때, 이혁수는 나를 위해 장작을 패고 있었다. 도끼를 휘둘러 단숨에 베어 버리자, 그 모습을 본 호위 무사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시골 아낙인 나에게 태자 곁에서 떨어지라며 더는 얽히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혁수는 손을 뻗어 내 앞을 막아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서연화는 내 부인이다. 반드시 나와 함께 돌아갈 것이다." "누구든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먼저 내 의견부터 물어보거라." 그 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다음 순간, 나는 손날로 이혁수의 목을 쳐 기절시킨 뒤, 그를 한 손으로 붙잡고 찔리는 마음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싱싱한 태자 전하가 필요하십니까?" "비싸지 않습니다. 딱 오십 냥이면 됩니다." 호위 무사들은 서로 얼굴만 마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 낭자, 황궁으로 가지 않으실 겁니까?"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생에 이미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동궁의 백옥 계단은 너무도 길어서, 시골 아낙의 피가 튀어도 얼룩 하나 남지 않았다. 제1화 호위 대장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서 낭자, 정말 오십 냥만 받으면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통행증도 필요하고, 마차도 한 대 필요합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주십시오." 호위 대장은 왜 하늘이 내린 부귀영화를 걷어차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태자를 데려가 임무를 완수해야 했기에 선뜻 승낙했다. 그는 은자를 세어보더니, 그 자리에서 돈과 이혁수를 맞바꿨다. 그런데 호위 무사들이 기절한 이혁수를 데려가려던 찰나, 그가 눈을 떴다. 내가 돈을 챙기는 모습을 본 그는 순식간에 두 눈이 붉어졌다. "서연화, 나를 고작 오십 냥에 팔아넘긴 것이냐? 돈이 그렇게 급했느냐?" 마치 내가 부군과 자식을 버린 매정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말투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주변의 호위 무사들은 하나둘 고개를 숙이며, 자기 주인이 웃음거리가 되는 꼴을 감히 보지 못했다. 나는 묵묵히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 "전하, 이것이 제가 가진 마지막 돈입니다." 우리 집은 그림자 인형극을 하던 집안이었다. 3년 전 전란 중에 어머니가 병에 걸려 끝내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묻어드린 뒤, 며칠 동안 나는 넋이 나간 채 지냈고 아무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이혁수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쓰러져 있었고, 그제야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의지할 데 없이 외롭게 지내는 꼴을 어머니가 차마 보지 못하고 보내 주신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이혁수는 칼자국과 화살 자국으로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고,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그가 죽을까 봐 밤낮없이 상처에 약을 갈아 주었고, 평소 광대라며 무시하던 의원들을 찾아가 애원했다. 그때 나는 전 재산을 털었고, 집안의 값나가는 물건은 죄다 팔아치웠다. 이것저것 다 합쳐보니 딱 오십 냥이었다. 이혁수는 여기까지 듣고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연화야, 나와 함께 돌아가자꾸나." "오십 냥이 아니라, 궁으로 돌아가면 오천 냥이든 오만 냥이든 내가 다 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나를 붙잡으려 했고, 호위 무사들에게 나를 마차에 태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허리를 깊이 숙여 절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전하께서는 큰 고비를 넘기셨으니, 더는 시골 부부라는 신분으로 숨어 지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니,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혁수의 손이 허공에 굳어버렸다. 그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지더니,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서연화,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 "신분을 숨긴 건 내 잘못이고, 네가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허나 괜한 고집 부리지 말거라. 이런 말로 나를 자극하지도 말고." 나는 절하는 자세를 유지한 채 고개도 들지 않았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조정의 높은 자리에 계셔야 하니, 세상의 온갖 일에 휘말리셔서는 안 됩니다." "소인은 땅에서 먹을 것을 캐며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는 몸입니다. 전하, 걸어온 길이 다르니 억지로 이어가려 하지 마십시오." "전하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고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그를 밀어내는 말들이었다. 이혁수는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눈까지 벌게졌다. "서연화, 아주 잘하는 짓이구나." 그는 돌아서며 호위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줘라! 그렇게 돈을 밝히니 오백 냥을 주거라! 지금 당장!" 호위 무사들은 허둥지둥 은표를 꺼내 나에게 건넸고, 이혁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나는 은표 뭉치를 쥔 채 그의 뒷모습을 보며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탐하지 말 것.’ 이 교훈은 전생에 이혁수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제2화 이혁수를 보내고 나서,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마을 전당포로 향했다. 몇 년 전 이혁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나는 인형극 상자를 전당포에 맡겼었는데, 그것은 어머니가 남겨주신 마지막 유품이었다. "주인장, 맡긴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주인장은 고개를 들어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싱긋 웃으며 계산대 밑에서 상자를 꺼내왔다. "서 낭자, 부군께서 진작에 찾아가셨습니다." "은자도 넉넉히 더 얹어 주면서, 낭자에게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집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라고요." 나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인형극 상자를 어루만지며 낮게 읊조렸다. "이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처음 이혁수를 살려냈을 때,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그를 벙어리라고 놀려댔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자존심이 상할까 걱정스러웠다. 그가 말하지 못하니 내가 대신 말해주기로 했다. 누군가 그를 비웃으면, 나는 마치 억척스러운 아낙네처럼 달려들어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욕을 퍼부었다. 또 그가 심심해할까 봐, 매일 밤 등잔불 아래에서 그림자 인형극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노래로 불렀다. 어느 날 밤, 극 중 주인공이 담을 넘는 대목을 부르다가 손에 든 인형이 그만 넘어졌다. 그때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참 재미있는 재주를 가졌구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선비들이 말하던 ‘맑은 샘물이 바위 위를 흐르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이혁수의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이 과거시험을 보러 도성으로 가던 길에, 집안의 상인 일행이 습격을 당해 화를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처참한 화살과 칼에 베인 상처는 한눈에 봐도 평범한 산적에게 당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눈치껏 묻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뜻이 맞아 함께 살아갔다. 이혁수가 장작을 패면 내가 밥을 지었고, 그가 글을 쓰면 나는 인형극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삼황자의 부하들이 근처를 돌며 남은 무리를 수색했다. 그때 이혁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집엔 쌀도 없었으니 약을 살 돈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인형극 상자를 전당포에 맡겨 약 한 첩과 쌀 반 자루를 바꿔 왔다. 이혁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를 데리고 낡은 사당으로 가서 천지에 절을 올렸다. 그리고 평생 나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때 나는 그의 눈에 어린 촛불빛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이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로 지내는 편이 외지인으로 있는 것보다 훨씬 안전했다. 나는 통행증을 챙겨 마차를 몰고 서쪽 대막으로 향했다. 흙먼지가 날리는 낡은 나무집들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나는 화려하고 눈부신 전각들이 무서웠다. 이를테면 동궁, 그리고 어머니가 자주 드나들던 그 으리으리한 저택들 말이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태어나 아비 없이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어머니는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관대작들에게 노래를 불러 주러 다녔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몸에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 입맞춤 자국이거나, 꼬집힌 멍 자국이었다. 어머니는 병이 옮아 그 화려한 대문 밖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보러 온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연화야, 절대로 남자에게 마음을 주지 말거라. 특히 권세와 힘이 있는 남자에게는 더더욱." 어머니가 내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들의 심장은 돌로 되어 있단다." 그래서 전생에 이혁수가 자기와 함께 돌아가자고 했을 때 망설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채 나를 끌어안았고, 숨결마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동궁이 너무 춥다고 했다. "부황께서는 나를 의심하고, 형제들은 서로 다투며, 모두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다." "나한테는 이제 너밖에 없다." 그 순간, 그도 나처럼 세상에 서로밖에 남지 않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에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이혁수는 약속을 지켜 나를 가장 화려한 별채에 머물게 했다. 하사품들이 물밀듯 쉴 새 없이 내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항상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연화야,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가 반드시 너를 황후로 만들어 주마." 사실 나는 황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유일한 욕심은, 그를 딱 한 번만 더 보는 것이었다. 이 깊은 궁 안에서 그가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혁수가 찾아오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매일 오던 것이 사흘에 한 번, 보름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조정의 비난도 점점 거세졌다. 비천한 출신인 내가 태자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승상 따님의 자리를 차지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했다. 소문이 가장 거셌을 때는 한 대신이 목숨을 걸고 내 처소까지 찾아와, 나를 내쫓으라고 호소했다. 그때 이혁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내 귀를 꽉 틀어막으며 듣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문밖에서 한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이혁수에게 물었다. "전하, 정말 저 여인을 황후로 삼으실 생각이십니까?" 제3화 "전하께서 저 여인의 귀를 막을 수는 있어도, 온 천하 사람들의 수군거림까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노인은 옆으로 비켜서며 귀한 댁 아가씨 한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승상…" 나는 이혁수의 표정과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보며 단번에 알아차렸다. 인형극에서 늘 보던 장면이었다. 군주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혼인을 해야 한다. 그날,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이혁수의 손을 스스로 뿌리친 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웃으며 말했다. "대감, 오해하셨습니다." "소인은 그저 극이나 하는 광대일 뿐입니다. 전하께서 저를 이곳에 두신 것도 그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소인과 전하는 아무런 사적인 감정이 없으니, 아가씨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이혁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심지어 고마워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승상과 그 딸인 조희진을 배웅하러 나갔다. 그날 이혁수는 나랏일을 논하느라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제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의 작은 욕심도 이제는 거두어야 했다. 광대라면 마땅히 막을 내려야 하는 법이니까. 밥을 먹고 짐을 챙겨 조용히 떠나려던 그때, 나는 마당에서 하늘 높이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 이혁수가 화로 앞에서 내 인형들을 태우고 있었다. 어머니가 칼로 한 땀 한 땀 새겨 만든 인형들이 불길 속에서 타고 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어 불길 속에서 인형들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혁수가 나를 가로막았고, 그는 차마 나를 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연화야, 희진이가 화가 났다. 이것들을 태워야만 희진이의 화가 풀릴 것이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전하, 저것이 우리 어머니께서 만드신 것이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제 목숨이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전하께서 어떻게…" 이혁수는 타오르는 불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는데, 그 눈에는 침묵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나를 향한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냐?" "북연(北戎) 대군이 국경까지 밀고 내려왔다. 희진이의 외조부는 진북대장군이시다." "희진이가 기분이 상해 대장군이 출병하지 않는다면, 단 하루라도 내 태자 자리가 위태로워진다!" "연화야, 넌 생각이 깊으니 이해할 수 있지?" 불길이 이혁수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는 사람을 잡아먹는 이 황궁을 증오한다고 했지만, 결국 그 역시 같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과 땅처럼 다른 존재였고, 애초에 억지로 바라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불길이 서서히 꺼져갔다. 이혁수는 생기 없는 내 눈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연화야, 나중에 내가 금으로 만들어 주마. 고작 낡은 소가죽 몇 장일 뿐인데, 태워 버린들 무슨 상관이냐." 나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저를 보내주십시오." 나는 애초에 이 깊은 궁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고, 오직 이혁수 때문에 이곳에 남기로 한 것이었다. 이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혁수는 나를 가장 외진 곳에 가두고, 남들 앞에 내놓을 수 없는 노리개로 삼았다. 나에게 최하위의 신분조차 주지 않은 채, 발목에는 줄곧 쇠사슬이 채워져 궁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태자비가 된 승상의 딸 조희진은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내 목소리는 벙어리 약 한 사발에 망가졌고, 오른손도 짓밟혀 손가락뼈가 부러졌다. 이 모든 것을 이혁수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저 나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할 뿐이었다. "연화야, 조금만 참거라."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반드시 네 원수를 갚아 주마." 참고 참아 그가 즉위하여 황후를 책봉하던 날, 동궁의 백옥 계단에는 눈이 가득 쌓였다. 내시가 독주 한 잔을 내밀며 상냥하게 웃었다. "폐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분이시니, 옥체에 오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서 낭자, 편히 가십시오." 내가 죽던 날, 바깥에서는 징과 북 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온 천하가 함께 경축했다. 한밤중 꿈에서 깨어 그날을 떠올릴 때면 뼈마디마다 욱신욱신 아려왔다. 지난날의 기억이 내 몸을 짓누르며 뼈를 갉아먹고 골수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그래도 다행히 눈을 뜨고 날이 밝으면, 모든 것이 지나가 있었다. 나는 변방의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인형극 노점을 차려 밥벌이를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북연군이 성안으로 쳐들어왔다. 전쟁의 불길이 온 성을 뒤덮고,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내가 급히 노점을 정리하는데, 우두머리 장수 하나가 곧장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높은 말 위에 올라타 사람을 죽이지도, 돈을 뺏지도 않았다. 그저 내 노점 앞까지 달려오더니, 내게 자루를 씌우고는 그대로 나를 붙잡아 갔다. 제4화 나는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에는 자루가 씌워진 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저는 그냥 극이나 하는 광대일 뿐입니다. 돈도 권력도 없는데 저를 왜 붙잡아 가시는 겁니까…" 그 사람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인형극을 잘하더구나. 마음에 들었다." 목소리에는 소년 특유의 능글맞은 기색이 묻어 있어 듣는 사람의 귓불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당장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대월(大越)에서 강화 협상을 하자며 사람을 보내왔는데, 계속 약탈하시겠습니까?" ‘북연왕이라고?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그 북연의 왕?’ ‘그의 손에 잡혔으니 무사하긴 글렀구나.’ 나는 다급한 마음에 이 틈을 타 도망치려 했지만, 북연왕은 가볍게 나를 제압했다. "당연히 가야지. 대월 놈들이 알아서 돈과 땅을 바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는 양털로 만든 밧줄로 내 손을 꽉 묶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귓가에 닿았고,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 "더 움직이면 늑대 밥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북연왕은 나를 강화 협상이 열리는 천막 안으로 데려갔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차갑고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월 태자 이혁수, 북연왕께 인사 올립니다."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이맘때면 이혁수는 승상의 딸을 끌어들이고 즉위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어찌하여 직접 이런 곳까지 와서 강화 협상을 논한단 말인가?’ 게다가 지난 생에 북연군이 쳐들어오긴 했어도 이곳까지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혹시 내가 궁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른 일들도 바뀐 건가?’ 북연왕은 입을 열자마자 성 네 곳과 2년간의 조공을 요구했다. "저희는 요구한 재물은 해마다 드릴 수 있습니다. 허나 땅을 내주는 것은 결코 불가합니다." 이혁수의 목소리는 어딘가 지쳐 있었다. 나는 그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건 아닌지 걱정하다가, 곧바로 스스로의 뺨을 후려치고 싶어졌다. ‘지난 생에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놈을 왜 걱정하고 있는 거지?’ ‘그럼 내가 겪은 고생이 너무 억울하지. 나도 참 미련하네.’ "그건 안 된다. 병사들을 물리려면 아까 말한 조건 그대로 해야 한다. 돈 한 푼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 그리고…" 뜨거운 시선 하나가 내 몸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이 여인은 내가 북연으로 데려가 내 왕비로 삼을 것이다." ‘겨우 이혁수에게서 벗어났는데, 이 남자는 나를 또 불구덩이로 데려가려는 건가?’ 너무나도 싫었다. 나는 힘겹게 몸부림치며 일어나려 했지만, 입에 천이 물려 있어 "으으"하는 소리만 낼 수 있었다. 이혁수도 놀란 듯,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북연왕도 취향이 독특하시군요. 양군이 대치 중인 곳에서 출신도 모르는 여인까지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빼앗아 오는 것도 나의 능력이지. 태자도 누군가와 몰래 백년가약을 맺고, 그 여인을 찾느라 도성을 발칵 뒤집어 놓지 않았느냐?" 북연왕은 칼집을 느긋하게 두드리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부인으로 맞이하지 못하는 기분, 태자도 잘 알지 않느냐?" "시원하게 대답하거라. 동의하느냐?" 아픈 곳을 찔린 모양이었다. 이혁수의 호흡이 흐트러졌고, 억눌린 분노가 목소리에 배어 있었다. "제 부인은 제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낭자는…" 아마도 내가 몸부림치는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대체 어떤 여인이기에 북연왕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제가 직접 한 번 봐야겠습니다." 북연왕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태자는 남의 부인이라도 빼앗아 갈 셈이냐?" 이혁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씩 나를 향해 다가왔고,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을 짓밟는 듯했다. 자루가 살짝 걷히며 시야에 눈부신 빛이 쏟아졌고, 이혁수의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이 보였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