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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이 수술실에 들어가지 말란다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어느날 야간 당직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던 순간, 동료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소 선생님, 빨리 돌아와 주세요! 중증 외상 환자가 방금 실려 왔는데 과장님이 당장 돌아와서 같이 처치하래요!] 나는 곧장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절대 수술실에 들어가면 안 돼! 이번 환자 처치에 참여하지 마!] [사실 그 환자는 이미 죽었어. 지금 가면 병원장 딸 대신 네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거야!] [환자 집안도 보통이 아니야. 넌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네 부모님마저 그 일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게 될 거야!] 순간 걸음이 멈췄다. 몇 초 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내 눈앞에 나타났던 상태창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내 눈에 도로 한쪽, 아직 뚜껑도 덮이지 않은 깊은 맨홀이 들어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그대로 맨홀 속으로 몸을 던졌다.
Chapters (1)
第1章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어느날 야간 당직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던 순간, 동료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소 선생님, 빨리 돌아와 주세요! 중증 외상 환자가 방금 실려 왔는데 과장님이 당장 돌아와서 같이 처치하래요!]
나는 곧장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절대 수술실에 들어가면 안 돼! 이번 환자 처치에 참여하지 마!]
[사실 그 환자는 이미 죽었어. 지금 가면 병원장 딸 대신 네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거야!]
[환자 집안도 보통이 아니야. 넌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네 부모님마저 그 일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게 될 거야!]
순간 걸음이 멈췄다.
몇 초 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내 눈앞에 나타났던 상태창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내 눈에 도로 한쪽, 아직 뚜껑도 덮이지 않은 깊은 맨홀이 들어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그대로 맨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제1화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한 지 벌써 10년.
나는 언제나 내 목숨보다 환자의 생명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연락받았을 때도 망설임 없이 곧장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내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눈까지 비벼 봤다.
야간 당직을 서느라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보는 건가 싶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태창에는 여전히 쉴 새 없이 새로운 문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큰일 났어! 네가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환자에게 사망 판정이 내려질 거야.]
[저 사람들은 네가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어. 널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수술실 의료진이 전부 병원장 딸 강영서를 감싸려고, 네가 처치를 잘못해서 환자가 죽었다고 몰아갈 거야.]
[진짜 조심해야 해!]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강영서는 대학 시절 내내 함께 지낸 룸메이트이자 내 절친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한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다는 거지?’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근처 교차로에서 난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한 마이바흐가 강으로 돌진한 거 봤어요?”
“차주는 벌써 응급실로 실려 갔다던데. 보통 사람은 아닌가 봐요.”
바로 그때 핸드폰이 연달아 울렸다.
강영서에게 온 메시지였다.
[정희야, 지금 어디야? 빨리 와!]
[수술 준비는 다 끝났어. 이제 너만 들어오면 돼!]
[빨리 좀 와. 나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강영서가 보낸 재촉하는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하필이면 집안이 보통이 아닌 환자였고, 하필이면 강영서가 나더러 빨리 수술에 들어오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차근차근 되짚어 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응급 상황이었다.
응급의학과에는 지금도 근무 중인 의사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굳이 야간 당직까지 끝낸 나를 다시 불러 수술에 투입할 이유가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태창의 경고가 점점 사실처럼 느껴졌다.
내가 수술복을 갈아입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꼼짝없이 희생양이 되는 거였다.
환자의 죽음은 전부 내 책임으로 돌아올 것이고, 동료들까지 한목소리로 나를 지목한다면 내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소름이 끼쳤다.
나는 강영서가 보낸 메시지를 한참 바라보기만 할 뿐,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처음 병원에서 연락받은 지도 벌써 10분 가까이 지나 있었다.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상태창 말대로 내가 누명을 쓰게 된다면...
그래.
이번 한 번만 상태창을 믿어 보자.
제2화
내가 수술실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나한테 누명을 씌울 수 없겠지.
나는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곧 응급실 건물 앞 도로에 뚜껑이 없는 깊은 맨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급히 응급실로 향하는 척하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맨홀 바로 앞까지 다다른 순간, 이를 악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맨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순간 몸이 허공으로 떨어지는 아찔한 감각이 덮쳐 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온몸에 힘을 줬다.
다음 순간, 몸이 콘크리트 바닥에 세차게 부딪혔다.
쿵!
둔탁한 충격과 함께 온몸에 통증이 퍼졌다.
다행히 맨홀 바닥은 말라 있어 고여 있는 물은 없었다.
하지만 맨바닥이라 충격을 흡수해 주는 것도 없었다.
머리와 종아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졌다.
온몸이 저절로 떨렸고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아무래도 다리가 골절된 것 같았다.
병원 외곽의 이 낡은 배수 맨홀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된 곳이었다.
며칠 전 누군가 맨홀 뚜껑을 훔쳐 가는 바람에 아직 새 덮개도 설치하지 못한 상태였다.
주변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안전 펜스만 둘러져 있었다.
응급 호출을 받고 병원으로 급히 돌아가던 내가 미처 앞을 보지 못하고 맨홀에 빠졌다.
누가 봐도 사고로밖에 보이지 않을 상황이었다.
옆에 떨어진 핸드폰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어둡고 적막한 맨홀 안에서 벨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화가 끊겼다가 다시 울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그대로였다.
나는 두 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
의식을 잃었는데 전화받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기만 기다리면 됐다.
가능하면 조금 늦게 발견될수록 좋았다.
15분 후.
맨홀 덮개를 설치하러 온 작업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중 한 명이 맨홀 옆에 떨어져 있는 내 가방을 발견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작업자는 곧바로 몸을 숙여 안쪽을 들여다봤다.
손전등 불빛이 맨홀 아래를 비추자, 바닥에 꼼짝도 하지 않고 쓰러져 있는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람이 빠졌어요! 빨리 구조 요청해요!”
작업자는 곧바로 무전기로 구조를 요청했다.
나는 계속 의식을 잃은 척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위에서는 점점 소란이 커졌다.
수많은 발소리와 다급한 외침이 맨홀 입구 너머로 들려왔다.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핸드폰 카메라 셔터음까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를 위해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구조용 사다리도 빠르게 설치됐다.
소방대원들은 쓰러져 있는 내 몸을 조심스럽게 고정한 뒤 구조 장비를 이용해 천천히 위로 끌어올렸다.
맨홀 밖으로 나온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내 상태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머리와 얼굴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나는 희미하게 신음을 흘렸다.
사람들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나를 바로 옆 응급실 건물로 옮겼다.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상태창을 통해 원래대로라면 벌어졌을 일을 알게 됐다.
강영서와 나는 같은 해에 의대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내내 서로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졸업 후에는 둘 다 국내 3대 메이저 병원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병원에 들어왔다.
하지만 입사 과정은 달랐다.
나는 오로지 내 실력으로 들어왔지만, 강영서는 병원장인 아버지의 힘으로 자리를 얻었다.
오랫동안 내 그늘에 가려 지내던 강영서는 나에 대한 감정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나보다 앞서고 싶어 했다.
이번 환자의 초기 처치도 강영서가 맡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데다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까지 앞선 탓에, 처치가 잘못된 바람에 환자 상태를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러자 강영서는 곧바로 모든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씌울 생각을 했다.
책임을 피하는 동시에 나까지 치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태창에 하나씩 떠오르는 내용을 끝까지 확인하고 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대학 시절 동안 나는 진심으로 강영서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설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다행이야. 이번에는 내가 피했어.’
이제 강영서가 무슨 방법으로 이 일을 내 탓으로 돌릴지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제3화
내 상처를 처치해 준 사람은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 장구영이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장구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소 선생님? 아니, 왜 여기 계세요? 지금 중증 외상 환자 처치 중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장구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경찰이 먼저 설명했다.
“환자가 이 병원 의사분이세요? 이분이 실수로 맨홀에 빠지셔서 방금 구조됐습니다.”
장구영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 말았다.
아무래도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경찰들이 옆에 있는 탓인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구영은 묵묵히 처치 도구를 챙겨 조심스럽게 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소독하고 봉합하는 내내 나는 정신이 또렷해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이마의 상처는 세 바늘이나 꿰맸고, 골절된 오른쪽 다리에는 깁스를 했다.
이어서 검사실로 옮겨져 머리 CT까지 찍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경미한 뇌진탕 정도였고, 그 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내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경찰 두 명이 응급실 관찰실로 들어왔다.
사고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소 선생님, 맨홀에 빠지게 된 경위를 처음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는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애써 기억을 더듬는 척했다.
“야간 당직을 마치고 병원 정문을 막 나갔을 때 응급의학과 동료한테 연락이 왔어요. 중증 외상 환자가 들어왔으니 당장 돌아와서 처치에 합류해 달라고요. 마음이 급해서 정신없이 돌아오다가 열려 있는 맨홀을 미처 못 봤어요. 그대로 빠졌고요.”
경찰들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병원 CCTV 관리실 직원이 급히 찾아왔다.
직원은 병원 앞 도로를 비추는 CCTV 영상을 경찰들에게 건넸다.
영상에는 내가 전화를 확인한 뒤 서둘러 병원 쪽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다만 맨홀 바로 앞은 가로수와 시설물에 가려져 있어 내가 실제로 떨어지는 순간까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은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영상 속 내 동선과 현장에 떨어져 있던 가방과 핸드폰 위치까지 확인한 뒤, 이번 추락을 단순 사고로 판단했다.
바로 그때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요! 큰일 났어요! 다들 제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제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요!”
나는 최대한 응급의학과 의사답게 보이려 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경찰들의 만류를 뿌리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빨리 저 좀 데려다주세요! 가서 환자 상태를 확인해야 해요!”
경찰이 황급히 나를 말렸다.
“소 선생님, 진정하세요. 지금 몸 상태로는 환자를 보러 가시면 안 됩니다.”
나는 애가 타는 척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휠체어에 올라탔다.
“안 돼요. 직접 가서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요. 꼭 가 봐야 해요.”
결국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서둘러 수술실 앞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이미 숨 막힐 만큼 적막했다.
복도에는 환자 가족들이 가득 모여 있었고, 다들 무너진 듯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수술실 불도 이미 꺼져 있었다.
모든 처치가 끝난 뒤였다.
제4화
수술실 앞에는 수술복 차림의 강영서가 보호자들과 마주 서 있었다.
강영서는 눈을 내리깔고 짐짓 침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호자들이 무너져 내렸다.
복도에 처절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강영서는 곧 말을 이었다.
은근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말투였다.
“처음에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집도의였던 소정희 선생님이 수술 중 몇 차례 실수를 해서...”
강영서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누구를 겨냥한 말인지는 뻔했다.
그 한마디에 보호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소정희 선생은 어디 있어요? 왜 안 나와요!”
“사람을 죽여 놓고 숨어 있으면 끝이에요? 당장 나오라고 해요!”
“이대로는 절대 못 넘어가요!”
순식간에 욕설과 고함이 복도를 뒤덮었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 태연하게 사실을 왜곡하는 강영서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때 보호자 중 한 명이 내 가슴에 달린 명찰을 발견했다.
남자의 시선이 명찰에 꽂혔다.
“응급의학과... 소정희?”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던 환자의 아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그대로 이성을 잃었다.
“너였어?”
벌떡 일어난 그녀가 눈이 벌게진 채 내게 달려들었다.
“네가 내 남편 수술한 의사지? 네가 실수해서 죽은 거잖아!”
그녀가 거칠게 내 옷깃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몸이 세게 흔들릴 때마다 골절된 오른쪽 다리에서 지독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주변에 있던 다른 보호자들까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누군가는 나를 밀쳤고, 누군가는 내 면전에서 욕을 퍼부었다.
“저런 사람이 무슨 의사야?!”
“사람을 죽여 놓고도 뻔뻔하게 앉아 있네!”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죗값 치르게 해야지!”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상태라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
나는 휠체어를 붙잡고 버티며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았다.
“죄송하지만 환자 처치를 맡은 의사는 제가 아닙니다! 저 이 수술 안 들어갔어요!”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고함에 금세 묻혔다.
“처음부터 여기 없었다고요! 저는 수술에 참여한 적 없어요!”
하지만 흥분한 보호자들에게 내 말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강영서는 사람들 뒤에 서서 내가 궁지에 몰리는 모습을 차갑게 지켜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희미한 비웃음마저 걸려 있었다.
“소정희, 아직도 아니라고 할 거야?”
강영서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실수한 거면 책임을 져야지. 이젠 골절인 척까지 해?”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빠져나가고 싶어?”
그 말에 보호자들은 내가 정말 사고를 낸 당사자라고 완전히 믿어 버렸다.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그때 젊은 남자 하나가 버럭 소리쳤다.
“골절인 척하는 거지?”
남자가 내 오른쪽 다리를 노려봤다.
“그래. 어디 진짜인지 한번 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내 휠체어 옆을 힘껏 걷어찼다.
휠체어가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다.
나 역시 중심을 잃고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런데 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발을 들어, 막 깁스를 한 내 오른쪽 다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아악!”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
끝내 비명을 참지 못했다.
나는 바닥에 웅크린 채 고통에 몸을 떨었다.
그때 소란을 듣고 경찰들과 장구영이 급히 달려왔다.
경찰들이 곧바로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나를 보호했다.
“그만하세요!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환자의 아내가 경찰의 소매를 붙잡았다.
“경찰관님, 바로 이 의사예요!”
그녀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이 사람이 수술하다가 잘못해서 제 남편을 죽였어요! 당장 잡아가 주세요!”
“맞아요! 저 의사예요!”
“저 사람이 사고 낸 거라고요!”
주변에서도 성난 목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모두 이번 의료사고의 책임자가 나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강영서는 경찰들을 보는 순간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병원 밖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앞에 선 경찰이 소란을 피우던 보호자들을 날카롭게 훑어봤다.
“잠시만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조금씩 입을 다물었다.
경찰이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소정희 선생님이 방금 수술실에서 직접 수술했고, 그 과정에서 실수해서 환자가 사망했다는 말씀이죠?”
보호자들은 망설이지도 않았다.
“맞아요!”
“저 의사 때문이에요!”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이상하네요.”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그리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렸다.
“이걸 한번 보시죠.”
화면을 확인한 순간, 강영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보호자들의 표정 역시 하나둘 굳어 갔다.
시끄럽던 복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