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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돌려줘
언니에게 자궁을 이식해 주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나를 지독하게 원망하던 소꿉친구가 덫을 놓아 나를 재벌가 후계자의 침대로 밀어 넣었다. 그 남자는 잠자리를 유독 밝히는 데다, 제 발로 굴러들어 온 여자는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내 비참한 끝을 기다렸지만 뜻밖에도 그는 나를 금이야 옥이야 끼고 살며 극진히 아껴주었다. 결혼 3년 동안,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와 몸을 섞는 걸 즐겼다. 발코니부터 주방, 차 안, 화려하기 그지없는 각종 연회장까지. 내가 그저 화장실에 가려 했을 뿐인데도 그는 굳이 쫓아와 나를 세면대 위에 앉히곤 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피임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는 좀처럼 들어서지 않았다. 그러다 임신한 줄 알고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간 날, 나는 우연히 그와 의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말았다. “태경아, 3년 전에는 나더러 송연주의 자궁을 몰래 언니한테 이식하게 하더니, 이제는 연주한테 선천성 불임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라는 거야? 널 이토록 사랑하는 여자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어. 연채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시댁에서 온갖 구박을 받을 텐데, 연주 자궁만 연채와 조직 적합성이 맞았으니까.” 익숙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낯설 만큼 서늘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가 구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랑은 처음부터 나를 철저히 속여 온 잔혹한 사기극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떠나주면 그만이다.
Chapters (1)
第1章
언니에게 자궁을 이식해 주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나를 지독하게 원망하던 소꿉친구가 덫을 놓아 나를 재벌가 후계자의 침대로 밀어 넣었다.
그 남자는 잠자리를 유독 밝히는 데다, 제 발로 굴러들어 온 여자는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내 비참한 끝을 기다렸지만 뜻밖에도 그는 나를 금이야 옥이야 끼고 살며 극진히 아껴주었다.
결혼 3년 동안,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와 몸을 섞는 걸 즐겼다.
발코니부터 주방, 차 안, 화려하기 그지없는 각종 연회장까지.
내가 그저 화장실에 가려 했을 뿐인데도 그는 굳이 쫓아와 나를 세면대 위에 앉히곤 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피임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는 좀처럼 들어서지 않았다.
그러다 임신한 줄 알고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간 날, 나는 우연히 그와 의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말았다.
“태경아, 3년 전에는 나더러 송연주의 자궁을 몰래 언니한테 이식하게 하더니, 이제는 연주한테 선천성 불임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라는 거야? 널 이토록 사랑하는 여자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어. 연채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시댁에서 온갖 구박을 받을 텐데, 연주 자궁만 연채와 조직 적합성이 맞았으니까.”
익숙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낯설 만큼 서늘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가 구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랑은 처음부터 나를 철저히 속여 온 잔혹한 사기극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떠나주면 그만이다.
제1화
병원 복도 끝, 조금 전 내게 단호하게 불임 판정을 내렸던 의사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불쌍하게도 연주는 자신이 임신했다고 믿고 있어. 하지만 계속되는 구토는 내가 호르몬 조절제로 처방한 약의 부작용 때문이야.”
하태경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부작용이 가장 적은 약으로 바꿔줘. 연주 몸에 이상이 생겨선 안 돼. 연채에게 앞으로 연주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진실을 알게 되면 연주가 널 원망할까 봐 두렵지 않아? 연주는 줄곧 네 아이를 낳고 싶어 했잖아. 그런데 평생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으니...”
의사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동정이 묻어 있었다.
“나를 원망해도 어쩔 수 없어. 연채가 고통받는 걸 차마 두고 볼 수가 없거든.”
하태경의 말투가 초조하게 변했다.
“연주야 이미 하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얻었잖아. 그 정도면 된 거 아니겠어?”
...
나는 모퉁이에 멍하니 서서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하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라니... 원래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가 지금껏 얻은 모든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 자궁과 맞바꾼 것에 불과했다.
나는 온몸의 기운이 쫙 빠지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무방비하게 내팽개쳐진 몸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몸을 일으킬 힘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 하태경이 나를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부축했다. 그러고는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내 얼굴을 응시하며 물었다.
“어쩌다 넘어졌어?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나는 소매 속에 감춘 손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관계를 깨뜨리는 건 내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방금 왔어. 굽이 너무 높아서 발목을 삐끗했어.”
그제야 그의 얼굴에서 팽팽하게 서려 있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는 나를 안아 들고 밖으로 걸어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굽 높은 신발은 신지 마.”
그토록 사랑했던 얼굴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서늘한 한기가 밀려왔다.
‘대체 언제 의사를 시켜 내 자궁을 빼앗아 간 걸까? 2년 전, 내가 맹장 수술을 받았을 때였을까?’
당시 나는 가벼운 복부 통증만 느꼈을 뿐인데, 의사는 맹장염이라며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태경은 내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전전긍긍하며 병원 한 층을 통째로 빌리고, 최고급 의료진까지 불러 수술을 진행했다.
그때의 나는 그가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조금이라도 다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그저 그가 우리에 가둬 키우던 양 한 마리에 불과했다. 그가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나를 보살핀 것도 결국 내 장기를 도려내 언니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제2화
저녁 식사 자리, 하태경은 내가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때까지 곁에서 재촉했다.
그는 다정한 얼굴로 숟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밥을 제대로 안 먹는데 몸이 어떻게 좋아지겠어?”
‘내 몸이 망가지면 언니에게 건강한 장기를 떼어줄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러는 거지?’
맞은편에 앉은 저 위선적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안에서 잠그고는, 문밖에서 걱정스레 묻는 그의 목소리는 애써 외면한 채, 방금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갑자기 진동했다.
“정말 여기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나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며 하태경이 그 말들을 내뱉던 차가운 말투를 떠올렸다.
“내, 정말이에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잠시 후, 하태경은 도우미에게 열쇠를 가져오게 해 문을 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또 토한 거야? 저번에 지어준 보약은 먹지 말고, 새로 지은 걸로 먹어.”
그는 매일같이 나를 속이고 있었다. 분명 호르몬제를 먹이면서 보약이라고 거짓말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정말 그의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리 쓴 약이라도 가슴에 희망을 품은 채 웃으며 삼켰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바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 죽는 거야? 제발 솔직하게 말해줘. 나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어?”
언제나 차분하던 남자의 얼굴에 미세한 당황이 스쳐 지나가더니, 그는 갑자기 나를 품에 꽉 끌어안으며 굳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넌 앞으로도 아주 오래오래 나와 함께 있어야 해.”
그의 사랑을 속삭이는 말은 언제나 듣기 좋았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임신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가 아이를 가지는 고통을 겪게 하기 싫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는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매일 내가 힘겹게 몸을 추스르며 쓰고 맛없는 약을 삼키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면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꿈까지 꾸게 하면서.
차라리 잘됐다, 아이가 없으면 우리 사이에 남을 미련도 없을 테니까.
그래야 나도 아무런 미련 없이 그를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잠들기 전, 하태경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집요하게 나를 탐닉했다. 그리고 다시는 죽는다는 말을 입에 담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나는 넋이 나간 채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끝난 뒤 그가 깊은 잠에 빠지자, 침대 옆 탁자에 놓인 그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의 잠금화면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한 번도 그의 휴대폰을 뒤져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는 바로 그런 내 마음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톡을 열고서야 나는 그가 언니의 이름을 ‘연아’라고 저장해 둔 걸 알게 됐다.
연아.
침대 위에서 나와 살을 맞대고 사랑을 속삭이던 그 순간, 그가 황홀한 목소리로 불렀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부른 적이 없었다. 그저 나를 송연채의 대용품으로 삼아 욕망을 달랬을 뿐이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두 사람의 대화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하루하루 구역질을 견디고 있을 때, 그는 송연채의 이름으로 ‘연아 자선재단’까지 설립했다. 선행을 베풀어 쌓은 복이 그녀의 남은 삶을 평안하고 건강하게 지켜주기를 바란다면서.
‘송연채를 위해 덕을 쌓고 선행을 베푼다고? 그럼 그들이 내게 저지른 죄는 대체 어떻게 갚을 건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입술을 짓이기듯 깨물며 두 사람의 대화를 하나하나 캡처했다.
마음은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아무런 감각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무뎌져 있었다.
나는 곧장 병원을 찾아가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의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수술을 대체 몇 번이나 받으신 겁니까? 신장 하나도 없고 자궁도 없는데, 간에도 손상된 흔적이 있네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많아서 저도 기억이 안 나요. 이런 몸으로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의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너무 앞일을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병원을 나선 나는 하태경의 회사로 향했다. 이제 그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안내 데스크의 직원이 나를 가로막았다.
내가 하태경의 아내라고 밝히자, 직원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 대표님 사모님이 되고 싶어 하는 여자가 한둘인 줄 알아요? 거울이나 좀 보고 오시죠. 어디서 감히 사모님 행세를 해요? 진짜 사모님은 지금 위층에 계시거든요.”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 자리에서 하태경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길게 이어질 뿐 끝내 받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의 얼굴에 떠오른 조롱이 더욱 노골적으로 짙어졌다.
나는 1층에서 고요히 기다렸다. 아주 늦은 시간까지 꼼짝 않고 기다리던 중,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송연채를 품에 안고 나오는 하태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네가... 여긴 웬일이야? 그게... 연채가 발을 삐끗했는데, 임산부 혼자 걷기는 힘들 것 같아서 내가 좀 도와준 거야.”
송연채는 하태경의 품에 바짝 기대어 나긋하게 웃었다.
“연주야, 네 형부가 해외 출장 간 사이에 내가 네 남편 좀 빌렸어.”
내 머릿속에는 ‘임산부'라는 세 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송연채는 내 자궁으로 아이를 가진 것이다.
가슴 깊은 곳을 날카로운 가시로 마구 긁어내는 듯한 통증에 숨이 턱 막혔다.
“하태경, 할 말이 있어.”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해. 처형이 배고프다니까 일단 장모님 댁으로 가서 밥부터 먹자.”
제3화
엄마는 송연채의 임신을 축하한다며 진작부터 그녀의 입맛에 맞춘 음식으로 한 상 가득 차려놓았다.
송연채가 코를 틀어막으며 입맛이 통 없다며 투정을 부리자 하태경은 우리 집 전담 가사도우미를 보내 요리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송연채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됐어. 연주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데. 나 때문에 너희 부부 얼굴 붉히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거든.”
그러자 엄마는 대뜸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며 닦아세웠다.
“네가 임신한 것도 아니고 사지 멀쩡한데 네 몸 하나 스스로 못 돌보니? 넌 어릴 때부터 이기적이어서 뭐 하나 시키면 맨날 앓는 소리만 하더라.”
애초에 엄마가 나를 낳은 건 언니의 병을 치료할 제대혈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녀에게 나는 그저 언니를 치료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니 내게는 단 한 치의 거역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더는 말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예전에 쓰던 작은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있고 싶었지만, 그곳은 이미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창고로 변해 있었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나는 손등으로 아무렇게나 훔쳐냈다.
“지금 태경이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아직도 네 분수를 모르는 모양인데, 나와 태경이가 함께한 세월은 네가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를 따라 들어온 송연채는 마치 본처가 첩을 훈계하듯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왜 그 남자랑 결혼하지 않았어?”
그녀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원래 손에 넣지 못한 게 더 탐나는 법이잖아. 난 태경이가 평생 나를 애틋하게 여기면서 내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길 바라거든.”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그녀의 배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송연채는 한층 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내 귓가에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
“부러워? 안타깝게도 넌 평생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야. 네 자궁은 지금 내 배 속에 있으니까.”
“자궁이 없으면 엄청 고생한다더라. 평생 호르몬제를 달고 살아야 하고, 끔찍한 부작용에도 시달려야 한대. 내가 태경이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내가 그런 고생을 할까 봐 단번에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거 있지.”
“그래서 너랑 결혼해서 비위까지 맞춰준 거야. 참, 내가 워낙 허약한 체질이잖아. 그러니까 널 튼튼하게 길러둬야 비상시에 써먹을 수 있다고도 했어.”
“넌 오히려 내게 감사해야 해. 넌 그저 나를 위해 준비된 보관함에 불과하니까. 이 세상에 널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손끝이 살갗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나는 손을 치켜들어 그녀의 뺨을 후려치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문 앞에는 잔뜩 화가 난 하태경이 서 있었다. 그는 곧장 달려와 내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며 매섭게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감히 언니한테 손찌검을 하려고 해?”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왜, 마음이 아파? 그렇게 애틋하면 아예 집으로 모셔가서 떠받들고 살지 그래?”
내가 이토록 매몰차게 쏘아붙인 건 처음이라, 그는 흠칫 놀라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때 송연채가 갑자기 배를 감싸 쥔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발 나 때문에 다투지 마. 다 내 탓이야, 내가 동생 기분을 상하게 했나 봐. 날 원망하는 것도 당연하지. 도우미도 필요 없으니까, 제발 나를 더 때리지만 말아줘.”
순식간에 하태경의 눈매가 서늘하게 굳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송연주, 사과해!”
나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간신히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나보고 사과하라고! 하태경,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나 해?”
“그만해!”
하태경이 내 말을 단칼에 끊었다.
“연주야, 너한테 정말 실망이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연채는 네 언니야. 아무리 질투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언니한테 손찌검을 하려고 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송연채를 품에 안아 들고 휑하니 방을 나가버렸다.
하태경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송연채는 마치 승리를 거둔 사람처럼 나를 향해 비릿하고 오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도발은 더는 내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이 남자에게 단 한 톨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하태경에게서 갑자기 메시지가 도착했다.
“연채가 지금 많이 상심했어.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오늘 밤 네가 직접 와서 사과해. 내가 사람을 보내 널 끌고 오게 만들지 말고!”
그의 말투에는 반박할 여지조차 없었다. 마치 내가 세상에 둘도 없는 몹쓸 죄인이라도 된 듯 단정 짓는 태도였다.
심지어 언니에게 사과할 선물까지 직접 사 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미 짐을 모두 싸놓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택시를 타고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나는 그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좋아, 아주 큰 선물을 보내줄게.]
메시지를 보낸 뒤 나는 유심칩을 빼내 반으로 꺾은 뒤 창문을 내리고 밖으로 던져버렸다. 모든 인연을 바람에 날려 보내듯.
다음 날 이른 아침, EMS 특급 우편물 하나가 하성 그룹 대표실로 배달됐다.
하태경이 봉투를 뜯자 안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종이를 훑어본 찰나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휴대폰을 집어 들어 전화를 걸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끝내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