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흩어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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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주년 기념일, 나는 집에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시각 강도윤은 첫사랑을 위해 온 도시를 수놓을 만큼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였다. 나는 폭죽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다. 검게 타들어 간 내 상처를 본 강도윤은 첫사랑이 병실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으며 차갑게 말했다. “보지 마. 눈 버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 세탁기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스타킹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담담히 꺼내 반듯하게 개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세탁기 뚜껑을 닫은 뒤 런던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Chapters (1)

第1章

결혼 4주년 기념일, 나는 집에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시각 강도윤은 첫사랑을 위해 온 도시를 수놓을 만큼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였다. 나는 폭죽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다. 검게 타들어 간 내 상처를 본 강도윤은 첫사랑이 병실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으며 차갑게 말했다. “보지 마. 눈 버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 세탁기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스타킹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담담히 꺼내 반듯하게 개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세탁기 뚜껑을 닫은 뒤 런던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제1화 저버린 마음 비행기 표 결제를 마치자마자 강도윤이 현관 밖 복도를 지나 들어왔다. 예전에는 담배에 입도 대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기본이 30분이었다. 내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런던행 항공권을 본 강도윤이 피식 웃었다. “뭐야, 여행이라도 가려고?” “응, 맞아.”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강도윤은 더 묻지 않고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내가 매일 밤 끓여 놓는 눈 건강에 좋다는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차는 언제부터 끓일 줄 알았어?” “지난주.” 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충 대답했다. 실은 무려 4년 동안 그에게 이 차를 끓여 주고 있었다. 강도윤은 다시 담배를 집어 들어 연기를 뿜어 댔다. 나는 저도 모르게 의자를 조금 뒤로 밀었다. 화상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이나 연기만 봐도 두려웠다. 의자 끄는 소리를 들은 강도윤이 나를 흘끗 보았다. “물어봤는데 네 상처 별거 아니라더라. 내일 출근할 때 나한테 태워 달라고 할 필요 없지?”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따지며 한바탕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우스를 움직이며 무심히 대답할 뿐이었다. “응. 귀찮게 안 할게.” 오늘 의사는 다리의 화상은 피부 이식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더는 인공수정을 시도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배란 유도 주사를 맞느라 바늘 자국투성이가 된 아랫배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얼룩덜룩한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강도윤은 나와 잠자리를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손자를 낳으라며 나를 닦달했다. 그렇게 배란유도 주사를 수도 없이 맞았지만 임신은 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강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오려 했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첫사랑 조유나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빨리 와. 오늘 내 생일이잖아.” 강도윤은 가볍게 웃더니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짧은 말 한마디를 남겼다. “오늘 밤엔 안 들어와.”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휴대전화 너머로 강도윤의 명령조 목소리가 들려왔다. “10분 줄 테니까 내려와. 출근시켜 줄게.” 나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목발을 짚은 채 그의 차 앞으로 갔다. 조수석 문을 열자 조유나가 달콤하게 웃고 있었다. “언니, 문 잘못 여셨어요.” “아, 그래.” 나는 뒤로 물러나 뒷좌석에 탔다. 강도윤은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 마침내 길가의 작은 만두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그는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듯 조유나에게 말했다. “유나야, 네가 그렇게 먹고 싶다던 만두 가게야.”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강도윤의 목적은 만두였고, 나를 출근시켜 주는 건 그저 덤이었던 셈이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인데도 차 안은 따뜻했다. 하지만 밀폐된 차 안에서 숨이 점점 막혀 왔다. 눈앞의 햇빛이 아득하게 작아지더니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마침내 차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들이쳤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강도윤이 운전석에 앉기가 무섭게 조유나가 만두를 내밀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두야. 오빠도 먹어 봐.” 조유나는 말하면서 풍만한 가슴을 계속 흔들어 댔다. 강도윤이 한입 베어 물자 만두 속 육즙이 흘러나왔다. 강도윤은 웃으며 말했다. “육즙이 엄청 많네.” 차가 지하 3층 주차장에 멈추자 두 사람은 출입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강도윤이 싸늘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넌 같이 올라오지 마. 회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곤란하니까.”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내 사원증으로는 99층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자리는 강도윤의 대표실 바로 옆인 100층에 있었다. 예전에 어떻게든 100층 출입 권한을 달라고 매달렸지만 강도윤은 단호히 말했다. “100층은 외부인한테 출입 권한 안 줘.” 그러면서 첫사랑인 조유나가 해외에서 돌아오자마자 곁에 들이고, 아예 자기 대표실 안에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제2화 서러운 현실 99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목발을 짚고 한 걸음씩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발의 상처가 채 낫지도 않았는데 하이힐에 쓸려 또 피가 났다. 그때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강도윤에게 여성 동반자와 함께 1층의 상공회의소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알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순간 강도윤이 다가와 내 발목을 잡았다. “다음부터는 굽 낮은 운동화 신어.” 강도윤은 옆에 놓아둔 플랫 슈즈를 꺼내 내 발에 신겨 주었다. “앞으로는 나랑 술자리 다닐 필요 없어.” 그때 대표실 문이 열리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조유나가 걸어 나왔다. 조유나가 강도윤 곁에 다가서자 강도윤이 일어나 그 작은 손을 잡았다. “넌 이런 공식 석상에 어울리지 않잖아. 앞으로는 유나가 대신 갈 거야.” 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래.” 강도윤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왜 그런지 안 물어봐?”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강 대표님, 제가 처리해야 할 회사 업무도 많고 아래층 행사에서도 대표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서 저랑 시간 낭비하실 필요 없어요.” 강도윤이 희미하게 웃었다. “강 대표님? 참 깍듯하기도 하네.” 강도윤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조유나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잉, 이제 안 가면 다리 아파서 못 서 있겠어.” 강도윤이 돌아서서 조유나를 달랬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유나 힘들게 하면 안 되지.” 두 사람은 서둘러 떠났다. 저녁 무렵, 지친 얼굴로 1층에서 올라온 강도윤이 빨간 코트 한 벌을 내 앞에 던졌다. “겨울이라 춥잖아. 아래 행사장에서 팔던 옷인데 원단이 괜찮아 보여서.” 내 표정이 굳었다. “강도윤, 우리 결혼한 지 4년이야. 내가 이런 화려한 색을 안 입는다는 것도 몰라?” 강도윤은 대표실 문을 쾅 닫으며 말했다. “입기 싫으면 말든가.” SNS 보니 조유나가 쇼핑백 십여 개가 놓인 사진을 올려놓았다. [누군가 내가 추위 많이 타는 걸 알고 코트를 10벌 넘게 사 줬지 뭐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깨끗이 세탁한 검은 스타킹을 가방에 넣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뒤 돌아온 강도윤이 그 가방을 들고 내 방 문을 열었다. “뭐야? 질투해?” 나는 눈앞의 엑셀 문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냥 다음에는 물건 두고 가지 말라고 알려 주는 거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도윤 옆을 지나며 덧붙였다. “강 대표야 즐거웠겠지만, 강씨 가문 체면도 조금은 생각해야지.” “적어도 겉으로는 아직 내가 강 대표의 혼인 신고한 아내야. 선은 넘지 마.” 강도윤이 비웃었다. “신이주,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마.” 나도 한마디 더 했다. “강 대표가 다른 여자를 숨겨 두고 만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어머님 생각은 다르실 거야.” 강도윤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해외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어머니만큼은 두려워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집안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그 말에 강도윤의 표정이 달라졌다. 마침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강도윤의 어머니 허정란이었다. 허정란은 아들을 한바탕 호되게 꾸짖었다. 전화를 끊자 강도윤이 나를 추궁했다. “네가 일렀어? 우리 엄마는 외국에 계신데 집안일을 어떻게 아셔?” “어머님은 매달 개인 주치의를 시켜서 나한테 배란 유도 주사를 맞게 했어. 그 덕분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내가 먼저 연락할 리가 있겠어?” 강도윤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건 우리 엄마가 너한테 잘못한 거야.” 그러고는 차갑게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일에는 참견하지 마.” 그때 밖에서 천둥이 우르릉 울렸다.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불꽃놀이에 화상을 입은 이후로는 이런 큰 소리만 들어도 몹시 무서웠다. 강도윤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가 나를 안으려고 손을 뻗으려던 순간이었다. 문자 알림음이 울리더니 조유나의 응석 섞인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도윤 오빠, 나 어두운 거 무서워. 빨리 와서 옆에 있어 줘.” 강도윤은 재킷을 집어 들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밤새 천둥이 쳐서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휴가를 내려고 하는데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주 씨, 담당하신 영업 건에 문제가 생겼어요. 강 대표님이 몹시 화가 나셨어요.” 제3화 회사에서 벌어진 소동 회의실에 급히 도착하니 강도윤과 조유나는 물론 다른 동료들까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동료들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서류를 펼쳤다가 그게 조유나가 내게서 빼앗아 간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를 발견한 강도윤이 버럭 화를 냈다. “네 실수 때문에 회사가 수수료를 10배나 더 내게 된 건 알아?” 옆에서 조유나도 거들었다. “그러게요.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왜 일을 맡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고생시키세요?” 나는 입을 열었다. “다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제가 아닙니다.” 강도윤이 계약서에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여기 프로젝트 담당자 서명은 네 거잖아.” 나는 계약서 마지막 장을 펼쳤다. “사내 규정에 따르면 마지막 페이지에 서명한 사람이 최종 책임자입니다.” 서명 부분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자 이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조유나.]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조유나를 향했다. 조유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내가 90%까지 마무리해 놓은 프로젝트를 조유나가 가로채 강도윤에게 잘 보이려 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거래처는 조유나가 업무를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함정을 팠다. 조유나가 금세 울먹거리며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도윤은 곧바로 마음이 약해졌는지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조유나를 품에 안았다. 회의가 끝날 무렵 강도윤이 통보했다. “이번 달 영업부 직원 급여에서 10%씩 공제해서 회사 손실을 메우겠어. 특히 신이주는 연말 상여금과 앞으로 3개월 치 월급을 전부 삭감해.” 보름 뒤 급여 명세서가 나오자 동료들은 불만을 쏟아 냈다. 한편 조유나는 강도윤에게 이달의 우수사원으로 선정되어 급여를 50%나 더 받았다. 조유나가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제가 이렇게 잘할 수 있었던 건 다 여러분 덕분이에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말이 끝나자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민망해진 조유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나는 영업부 직원들의 계좌번호를 모두 받아 적은 뒤 사비를 털어 공제된 급여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채워 넣었다. 나는 동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며 회사를 이렇게 키울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리 애써도 이 회사는 결국 제 이름을 가진 회사가 아니니까요.” 다들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내 일처럼 분해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사직서를 출력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퇴사 절차를 마쳐야 했다. 대표실에 들어가자 조유나가 강도윤의 무릎 위에 앉아 입으로 귤 조각을 건네 먹이고 있었다. 나를 본 조유나가 놀라 일어섰다. 그런데 당장 나를 나무라려던 얼굴은 곧 딴판으로 바뀌었다. “도윤 오빠, 비서가 갑자기 들어와서 깜짝 놀랐잖아.” 강도윤이 앞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무슨 뜻인지 알고 서류를 펼쳤다. 나는 서류와 펜을 함께 내밀며 서명할 곳을 짚었다. “여기 서명해.” 조유나와 농담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팔린 강도윤은 서류를 보지도 않고 내가 가리킨 곳에 서명했다. 나는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 “그럼 난 갈게.” 강도윤이 짧게 알았다고 대꾸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대표실에서 나왔다. 업무 인수인계가 끝났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강도윤이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왔다. 나는 숙취에 좋은 차를 끓여 그에게 먹인 뒤 잠자리에 들려 했다. 그런데 강도윤은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끌어안고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내가 떠날 때가 되니 이제야 마음이 동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는 바닥에 토해 버렸다. 나는 술 냄새가 무엇보다 싫었다. 나는 일어나 서재로 가서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강도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클럽 음악이 들렸다. 강도윤이 명령했다. “이번 주에 큰 상공회의소 임원급 관계자들이 해영시에 와. 무슨 일이 있어도 그쪽 계약을 따 와.” 7년 전, 내가 근무하던 법률사무소에 불이 났을 때 나를 구해 준 사람이 강도윤이었다. 잠시 생각한 끝에 그때 진 목숨 빚을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갚기로 했다. 나는 옷을 갖춰 입고 고객에게 연락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상대는 중년 남성이었다. 협상 자리에는 우리 그룹뿐 아니라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는 다른 회사 관계자들도 와 있었다. 고객은 우리를 이리저리 떠보더니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서 술을 제일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계약을 주겠습니다.” 그들은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웃으며 빠지라고 권했다. 나는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집어 들고 6병을 연달아 들이켰다. 그들은 넋이 나간 채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계약서에 서명한 뒤 배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병원으로 가 위세척을 받았다. 의사는 안쓰러운 얼굴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리하면 어떡해요. 이러다가는 위를 절제해야 할 수도 있어요.” 나는 쓴웃음만 나왔다. 예전의 나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룹의 성장은 내가 술을 한 잔 한 잔을 마시며 버텨 낸 결과였다. ‘강도윤, 이제 너한테 진 빚은 없어.’ 계약이 회사에 전달되자 강도윤은 곧바로 축하 파티를 열겠다고 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내 공로를 아는 동료들이 꼭 참석해 달라고 연락했다. 강도윤도 문자를 보냈다. 술을 챙겨 오되 살짝 취할 정도로 도수가 약한 걸로 사 오라는 내용이었다. 파티장에 도착하자 강도윤이 내가 사 온 술을 조유나에게 건넸다. 조유나는 한 모금만 마시고도 얼굴을 붉혔다. “도윤 오빠, 나 취했나 봐.” 조유나가 바닥에 쓰러지는 시늉을 하자 강도윤이 황급히 부축하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도수 낮은 걸로 사 오라고 했잖아. 이런 걸 사 와서 누굴 해치려고?” 나는 코웃음을 치며 병에 적힌 설명을 가리켰다. “그냥 가벼운 알코올 음료잖아. 도수가 얼마나 된다고 그래?” 조유나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됐어, 이주 언니 탓하지 마. 내가 너무 신나서 술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어.” 강도윤이 나를 호통치려다가 내 창백한 얼굴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 거래처 사람들이 너무 괴롭힌 건 아니지?” 나는 테이블 위의 술을 가리켰다. “브랜디 6병 마신 게 다야.” 강도윤의 얼굴에 마음 아파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 모습을 본 조유나가 과장되게 외쳤다. “어머, 나 쓰러질 것 같아!” 강도윤은 얼른 조유나를 부축해 위층 객실로 데려가며, 떠나기 전 내게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나 코트 집에 가져가서 세탁해 놔. 내일 가져오고.” 동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그들은 내가 곧 떠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붙잡고 싶어 했다. 나는 그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살다 보면 또 만나겠죠. 다들 잘 지내세요.” 그리고 문가에 놓아둔 캐리어를 끌고 그날 밤 비행기를 타러 갔다. 아무도 몰랐다.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는 내 부모님이 사실 런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그 사실을 아는 강도윤조차 내가 그저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항에 마중 나온 부모님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소장을 한 장 작성했다. [피고, 강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