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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그대로, 당신만 빼고
결혼식을 3 일 앞두고서야 알았다. 서이준이 예식 장소를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소꿉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해외의 고성으로 바꿔 버렸다는 걸. 따지러 갔다가 친구에게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태린이가 안목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평생 웃음거리가 될 뻔했어." 친구가 물었다. "할머니 댁에서 식 올리기로 약속했다며. 홧김에 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서이준이 코웃음을 쳤다. "걔네 집안 망하기 직전이야. 나랑 결혼하는 것 말고 무슨 수가 있겠어? 파혼을 감당할 처지가 아니라고." "웨딩 업체에서 연락하라고 해 뒀어. 지금쯤 비행기 표 변경하느라 정신없을걸." 분하고 억울해서 가슴이 꽉 막혔다.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돌아섰다. 3 일 뒤, 고성에서는 예정대로 결혼식이 열렸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항공편으로 바꾸지도, 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 외할머니의 오래된 마당에서 다른 남자와 반지를 나눠 꼈다. 서이준은 아직도 모른다. 내가 결혼하려 했던 건 살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10 년 동안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으니,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도 될 때였다.
Chapters (1)
第1章
결혼식을 3 일 앞두고서야 알았다. 서이준이 예식 장소를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소꿉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해외의 고성으로 바꿔 버렸다는 걸.
따지러 갔다가 친구에게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태린이가 안목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평생 웃음거리가 될 뻔했어."
친구가 물었다.
"할머니 댁에서 식 올리기로 약속했다며. 홧김에 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서이준이 코웃음을 쳤다.
"걔네 집안 망하기 직전이야. 나랑 결혼하는 것 말고 무슨 수가 있겠어? 파혼을 감당할 처지가 아니라고."
"웨딩 업체에서 연락하라고 해 뒀어. 지금쯤 비행기 표 변경하느라 정신없을걸."
분하고 억울해서 가슴이 꽉 막혔다.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돌아섰다.
3 일 뒤, 고성에서는 예정대로 결혼식이 열렸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항공편으로 바꾸지도, 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 외할머니의 오래된 마당에서 다른 남자와 반지를 나눠 꼈다.
서이준은 아직도 모른다. 내가 결혼하려 했던 건 살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10 년 동안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으니,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도 될 때였다.
제1화
서림그룹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서이준에게서 해외 고성의 주소와 사진 한 장이 왔다.
미색 석회암 벽에 붉은 금빛 돔을 얹은 고성의 정면. 더없이 호화로웠다.
그런데 사진 한가운데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풍성한 웨이브 머리를 늘어뜨린 이태린이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 위로 손가락이 잠깐, 2 초쯤 멈췄다. 문득 어이가 없었다.
신부는 나였다. 서이준이 우리 결혼식 장소로 고른 곳이었다.
그런데 보내온 사진의 주인공은, 늘 그냥 친구라며 신경 쓰지 말라던 소꿉친구였다.
그 뒤로는 다시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그를 잘 알았다. 웨딩 업체에서 이미 내게 연락했을 테니, 당연히 그리로 올 거라 생각하고 주소를 보낸 거였다. 표를 변경하면서 목적지를 모를까 봐.
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할머니 댁에서 식을 올리기로 약속해 놓고, 이태린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망설임도 없이 바꿀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마침 서이준이 가사도우미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최예원이 애도 아니고, 좀 늦게 들어온다고 나까지 귀찮게 해야겠어?"
"그래도 최예원 씨가 낮에 웨딩 업체에서 전화 받고 나가셨잖아요. 혹시 홧김에..."
서이준이 비웃었다.
"비행기 표 변경하러 간 거야. 그 집 식구들 다 변경하는 게 어디 간단한 일이겠어?"
"걱정 마. 최예원은 나랑 결혼하는 게 소원이야. 나 없으면 못 살아."
"남극에서 결혼하자고 해도 기어서라도 올 애라고. 하물며 태린이가 고르고 고른 해외 고성인데."
가사도우미가 입을 다물자 서이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린이가 5 분째 답이 없네... 가 봐야겠어."
서이준이 뛰어나왔을 때,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
애초에 서이준의 저택이지, 내 집은 아니었다.
결혼 준비하기 편하겠다며 함께 지내자고 한 사람은 서이준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여느 예비부부처럼 다정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태린이 실연하고 귀국하자, 서이준은 위로해 주러 가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4 개월이 흘렀다.
이태린이 힘들다고만 하면, 서이준은 망설이지도 않고 나를 두고 달려갔다.
예복도 내가 골랐고 외할머니 댁 마당도 내가 꾸몄다. 서이준은 어느 것 하나 함께하지 않았다.
서운하다고 항의할 때마다 이태린과 이야기하던 중에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너도 집안 사업 살리려고 나랑 결혼하려는 거잖아."
제2화
"결혼해 주겠다고 했으면 됐지, 뭘 그렇게 따져?"
이태린에게 전화가 오자 서이준은 곧장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내 말만 허공에 흩어졌다.
"먼저 청혼한 건 너였잖아."
"난 널 사랑해서 받아들인 건데..."
결혼을 앞두고 들떠 있던 나는 어느새 빈방에 홀로 남았다. 내 결혼식인데도 구경꾼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는 어디서 식을 올릴지조차 내가 정할 수 없었다.
그날 밤은 친구 집에서 잤다. 서이준에게서는 끝내 연락이 없었다.
다음 날, 업무 인계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이태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약할 때 양쪽에서 꽃잎이 날려야 해. 그래야 로맨틱하잖아."
서이준은 옆에 앉아 웃음 어린 눈으로 이태린만 좇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내게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눈빛이었다.
이태린이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예원아, 이리 와 봐. 결혼식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시야 한쪽에 잡힌 서이준의 표정은 못마땅해 보였다.
"왜 이제 와? 태린이는 네 결혼식 때문에 4 개월을 고생했는데, 넌 손 하나 까딱 안 하네."
"차라리 잘됐지. 너보다 태린이가 훨씬 안목이 좋으니까. 네 말대로 촌스럽게 했다간 아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비웃음을 샀겠어?"
또다시 나만 구경꾼이 된 기분이었다.
"피곤해. 먼저 좀 쉴게."
잔뜩 찌푸려진 서이준의 얼굴을 뒤로하고 곧장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데, 몇 번이나 거절했던 그 메시지가 또 떴다.
[너만 동의하면 난 가진 걸 다 잃더라도 결혼식에 가서 널 뺏어 올 거야.]
문밖에서는 이태린이 꿈꾸던 고성의 꽃 장식 결혼식을 설명하고 있었다. 사이사이 서이준이 몇 번이고 원하는 대로 하라며 맞장구쳤다.
씁쓸하게 웃으며 답장을 썼다.
[뺏을 필요 없어. 내 신랑은 너니까.]
'서이준, 네가 그 고성으로 가야 한다면, 난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이제 널 놓아줄게. 나 자신도 그만 놓아주고.'
밤새 뒤척였다.
눈을 감을 때마다 서이준과 사랑했던 지난 10 년이 떠올랐다.
내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던 사람. 누가 나더러 서이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든, 언제나 내 편에 서 주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살아 계실 때, 서이준의 손등을 토닥이며 나를 부탁하셨다.
서이준도 망설임 없는 눈빛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저보다 예원이를 더 사랑해요. 절대 서운하게 하지 않을게요."
"약속할게요. 나중에 할머니 댁 마당에서 식 올릴 거예요. 예원이 시집가는 모습 꼭 보여 드릴게요!"
그때는 그 약속이 한 치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굳은 약속도 세월 앞에서는 닳아 없어진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결혼식 전날, 거실에서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보라색 드레스를 보았다. 가슴에는 커다란 붉은 꽃 장식이 달려 있었다.
이태린이 반갑게 다가왔다.
"예원아, 봐 봐. 내가 직접 디자인한 웨딩드레스야."
"이준이가 너는 시골 분위기를 좋아한다길래, 시골 결혼식 자료 찾아보면서 한참 고민했어!"
이미 마음을 접기로 했는데도, 웨딩드레스라는 그 옷을 보자 미간이 저절로 좁아졌다.
"우리 동네에서도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 들러리 드레스 말고."
이태린이 멈칫하더니 천천히 물러섰다.
"미안해, 예원아. 내가 멋대로 해서 불편했구나."
"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당장 뜯어낼게!"
이태린이 가위를 집어 드레스에 가져다 댔다. 서재에서 나오던 서이준이 단번에 빼앗았다.
"가위 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다치면 어쩌려고?"
제3화
이태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도 떨렸다.
"이준아, 내가 잘못한 거야? 예원이가 불같이 화를 내서..."
설명할 틈도 없이 서이준이 굳은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태린이가 네 웨딩드레스 때문에 4 개월을 준비했어. 밤새 디자이너랑 얘기한 게 몇 번인 줄 알아? 그런데 고맙다는 말 대신 이러는 거야?"
"태린이 아니었으면 넌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도 없었어."
"사과해!"
나를 보는 눈에는 혐오가 서려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니 더 기가 막혔다.
전에 내가 예복을 의논하려 했을 때, 서이준은 이태린을 데리고 발리로 바람 쐬러 가야 하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었다.
하긴, 이태린이 얼마나 소중한데.
이태린이 실연해서 힘들다고 하자, 서이준은 밤새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내 생일에는 이태린과 로맨스 영화를 보겠다고 영화관을 통째로 빌렸다.
내가 쉬지 못하고 일하다 고열에 시달릴 때, 서이준은 물이나 마시라고 했다. 그러고는 조금 긁힌 이태린을 사립 병원으로 데려가 상처를 처치받게 했다.
내 결혼식이었고,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그런데 이태린이 끼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그쪽에서 도와준 일이 되어 버렸다.
서이준의 친척들까지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며 못마땅해했다.
지금도 내 드레스와 서이준의 예복은 손님방 옷장 안에 있었다.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은 사람이 나더러 이태린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생각할수록 실망스러워 표정이 굳었다.
서이준이 냉소했다.
"사과 안 하겠다고? 그럼 결혼도 없어. 태린이한테 사과하기 전까진 식 못 올릴 줄 알아."
문득 꽉 쥐었던 손이 풀렸다. 서이준을 똑바로 바라봤다.
"좋아."
그 말을 끝으로 방에 돌아가 짐을 쌌다.
임유건이 외할머니 댁에 부겐빌레아가 피었다고 했다. 어서 돌아가 보고 싶었다.
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오기 전, 외할머니와 함께 심은 꽃이었다.
거실에서 이태린을 달래던 서이준은 어쩐지 짜증이 났다.
손님방을 한번 흘끗 보더니, 이태린 몰래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 답이 왔다.
[대표님, 최예원 씨가 서림항공 예약을 변경한 내역은 있습니다. 다만 제 권한으로는 변경된 항공편의 상세 정보를 열람할 수 없어 대표님께서 직접 조회하셔야 합니다.]
서이준의 굳었던 얼굴이 풀렸다.
[됐어.]
짐을 다 쌌을 때, 서이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랑 결혼할 거면 그 성질부터 고쳐야지. 태린이는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건데, 왜 상처를 줘?]
[그만하고, 점심에 가족 모임 있는 거 알지? 태린이는 내가 먼저 데려갈게. 너한테는 기사 보낼 테니까.]
[와서 태린이한테 사과해. 그럼 끝난 일이야. 내일 결혼식인데 다들 기분 망치게 하지 말고.]
자기 가족 모임에 데려가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태린이었다.
기사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짐을 마지막으로 돌아봤다.
'그래, 잘됐네.'
서이준이 사람들 앞에서 청혼했으니, 나도 사람들 앞에서 끝내면 되는 거였다.
서이준의 본가에 도착하니 이태린이 사람들 한가운데서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예원아, 여기야!"
나를 본 이태린이 가느다란 하이힐을 신고 다가왔다. 붉은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내가 피로연에서 하객들에게 잔을 들고 인사하려고 준비한 드레스와 똑같았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서이준은 이태린을 보자 눈을 반짝였다.
"태린아, 정말 예쁘다!"
이태린이 얼굴을 붉혔다.
"이준아, 왜 그래. 예원이도 있는데."
"예원아, 신경 쓰지 마. 아침에 이준이 집에서 나 때문에 싸웠잖아. 아직도 미안해 죽겠어."
서이준은 한순간도 이태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눈빛에 담긴 감탄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손을 뻗어 이태린의 눈 밑에 떨어진 속눈썹을 떼어 주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짓궂게 놀렸다. 서이준의 아버지 서정호는 아쉬운 기색이었다.
제4화
"역시 우리 이준이한테는 태린이가 더 잘 어울리는데."
나는 내가 입은 푸른빛 드레스를 내려다봤다.
내가 대단한 미인은 아니어도, 예전의 서이준은 곧잘 예쁘다고 했다. 그러고는 귀 옆 잔머리를 다정하게 정리해 주곤 했다.
이태린이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서정호를 나무랐다.
"아저씨, 예원이 앞에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예원이가 속상해하잖아요."
서정호와 서이준의 어머니 박미경이 코웃음을 쳤다.
그제야 서이준이 나를 봤다.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 부모님은 태린이 어릴 때부터 보셨잖아. 그런 말 한마디까지 따져야겠어? 속 좁게 굴지 좀 마."
"엄마가 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셨는지 알겠다. 할머니 손에서 크다가 18 살에야 도시로 왔다더니, 배운 게 하나도 없네."
미간이 좁아졌다. 서이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서이준, 할머니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알잖아. 그런 말 들으시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지 생각 안 해?"
서이준은 잠깐 찔리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식구들이 지켜보고 있자 도로 얼굴을 굳혔다.
"어쨌든 태린이랑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일 뿐이야. 여자들끼리 질투한다고 애꿎은 사람 상처 주지 마."
결국 이태린 편을 들며 나를 몰아붙이려는 거였다.
갑자기 지쳤다. 지난 일들이 한꺼번에 짓눌러 와 숨이 막혔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오늘 온 건, 사실 할 말이 있어서..."
이태린이 큰 소리로 말을 끊었다.
"이준아, 내 제일 친한 친구도 거기 가 보고 싶대. 비행기에 자리 더 있어?"
서이준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비서가 머뭇거렸다.
"대표님, 마지막 자리는 최예원 씨 몫으로 남겨 두라고..."
"그럼 됐어. 나 때문에 예원이가 속상해하는 건 싫어..."
서이준은 이태린이 서운해하는 걸 못 견뎠다. 바로 결정을 내렸다.
"최예원은 다른 비행기 타면 돼. 태린이 친구는 거기 낯설잖아. 우리랑 같이 가야지."
이태린이 금세 활짝 웃으며 서이준의 팔을 끌어안고 흔들었다.
"이준아, 역시 나한테는 네가 최고야!"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에 한층 더 비웃음이 짙어졌다.
"결혼식 한다고 우리한테 직항편을 두 편이나 따로 마련해 놓고, 정작 신부는 안 태워 간다네."
"그게 뭐 대수야. 최예원이 집안 살리려면 다른 비행기가 문제겠어? 걸어서라도 가야지."
사방에서 나를 비웃는데, 서이준은 이태린만 보고 있었다.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또 구경꾼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쉬고 돌아섰다. 파혼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가려는데, 이태린의 목에 걸린 금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매화 모양 다이아몬드가 펜던트로 달려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다이아몬드 어디서 났어?"
손끝이 이태린의 목에 닿기도 전에 서이준이 나를 거칠게 밀쳤다.
"최예원, 제정신이야?"
이태린이 창백해진 얼굴로 서이준의 등 뒤에 숨었다.
"예원아, 내가 널 속상하게 한 건 알아. 그래도 오늘은 가족들 다 모인 자리잖아."
"내가 먼저 사과할게. 끝나고 나면 때리든 욕하든 다 받아 줄게. 그러면 안 될까?"
사람들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이태린 주위에 모여들어 저마다 달랬다.
서이준이 험악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태린이가 어떻게 하는지 봐. 너랑 얼마나 다른지 좀 보라고!"
"우리 부모님이 태린이 한마디 칭찬했다고 난리를 쳐? 결혼하고 들어오면 집안을 얼마나 들쑤실지 뻔하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이태린의 목걸이를 가리켰다.
"내가 난리를 쳐? 할머니가 내게 남겨 주신 다이아몬드 반지를 펜던트로 만들어 달고 있는데, 묻지도 못해?"
제5화
"서이준, 그게 나한테 어떤 물건인지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 오래된 마당을 빼면, 외할머니를 추억할 마지막 물건이었다.
서이준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곧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잘못 봤어. 네 할머니 다이아몬드 아니야."
"내가 못 알아볼 리 없어. 할머니 거 맞아. 늘 금팔찌랑 같이 보관했단 말이야!"
"우리 가족들 다 있는 자리야. 망신시키지 말고 일단 돌아가!"
믿을 수 없어 서이준을 바라봤다. 내 눈물이 흘러내리자 서이준이 당황했다.
이태린 때문에 마음을 짓밟힌 게 몇 번인데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눈물을 보니 서이준은 가슴이 철렁했다.
막 나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순간, 이태린이 울음을 터뜨렸다.
"예원아, 내가 예쁘다고 달라고 졸랐어. 이준이한테 그러지 마..."
서이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태린아, 내가 주고 싶어서 준 거야. 왜 네 잘못이라고 해?"
서이준은 몸을 굽혀 이태린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서이준, 할머니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무슨 권리로 할머니 물건을 줘 버려?"
이태린이 한 걸음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큰 소리로 울었다.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금목걸이가 예쁘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이준이도 팔찌를 녹여서 목걸이를 만들어 주지는 않았을 거야."
"예원아, 때리려면 나를 때려. 너희 내일 결혼하잖아. 싸우면 안 돼..."
숨을 크게 들이마셔도 치미는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내 결혼 선물로 남겨 주신 금팔찌를 녹여 이태린의 목걸이로 만들었다니.
짝!
온 힘을 다해 이태린의 뺨을 때렸다.
"내놔!"
이태린의 뺨에 붉은 자국이 번졌다. 서이준은 곧바로 발끈해 내 뺨을 후려쳤다.
"그깟 팔찌랑 다이아몬드 때문에 태린이를 때려? 이렇게 막돼먹은 여자랑 어떻게 결혼을 해?"
"태린이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파혼이야!"
맞은 충격에 몇 걸음 비틀거리다 겨우 멈춰 섰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이태린을 달래는 서이준만 빼고.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서이준을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토록 결혼을 고집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 나은 선택이 있었는데. 10 년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고집을 부리다가, 외할머니가 남겨 주신 결혼 선물까지 망가뜨렸다.
이태린의 목에 걸린 목걸이와 다이아몬드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주먹을 꽉 쥐고 돌아섰다.
서이준은 멀어지는 내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이태린을 부드럽게 달랬다.
임유건의 차는 서이준의 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내가 차에 오르자 임유건이 움찔했다. 몸을 기울여 내 뺨을 살피려는 걸 밀어냈다.
"가자.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임유건이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서이준의 본가를 훑어보는 눈빛이 사나워졌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하온시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휴대전화에는 서이준이 오후에 보낸 메시지 세 개가 와 있었다.
[넌 왜 그렇게 내 입장을 이해 못 해? 우리 가족들 앞에서 날 망신시키면 너한테 뭐가 좋은데?]
[태린이가 용서해 줬으니 다행인 줄 알아. 이 일은 그만하자. 우린 먼저 비행기 탈게. 내일 거기서 보자.]
[팔찌랑 반지잖아. 내일 열 개 사 줄게. 그럼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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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서이준의 집에서 결혼 준비금으로 준 돈도 남김없이 돌려보냈다.